
확신이 생길 때쯤, 나는 늘 늦어 있었다
아침에 뉴스를 보다 보면 가끔 그런 순간이 온다.
“이제는 확실한 것 같은데?”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.
문제는 그때다.
그 확신이 들 때쯤이면, 시장은 이미 한참 앞서가 있다.
확신은 언제나 뒤늦게 온다
처음엔 늘 애매하다.
조금 더 보고 싶고, 한 번 더 확인하고 싶다.
확신이 없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.
그러다 시간이 지나고,
주변에서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고,
뉴스 제목이 조금 더 단정해질 때
비로소 마음이 놓인다.
그리고 그 순간,
이미 가격은 달라져 있다.
문제는 정보가 아니었다
예전에는 이걸 정보 부족 탓으로 돌렸다.
더 공부했어야 했고, 더 많이 알았어야 했다고.
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면
정보는 늘 충분했다.
부족했던 건 정보가 아니라 마음의 준비였다.
확신이 필요했던 게 아니라,
틀릴 가능성을 감당할 준비가 없었던 거다.
확신은 행동을 늦춘다
아이러니하게도,
확신은 결정을 빠르게 하지 않는다.
오히려
“이 정도면 확실하니까 조금만 더 보자”라는
이상한 여유를 만든다.
그 여유는
대부분 늦음으로 이어진다.
그래서 요즘은 확신을 의심한다
요즘은 확신이 들면
한 번 더 생각해 본다.
“이 확신이
지금 판단을 돕는 건지,
아니면 마음을 편하게 만들기 위한 건지.”
확신이 생겼다는 건
어쩌면 이미 많은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.
늦었다는 감각이 남을 때
결과를 보면 늘 비슷하다.
틀린 선택보다,
늦은 선택이 더 오래 남는다.
그때 왜 안 했을까가 아니라,
왜 그때까지 기다렸을까가 마음에 남는다.
나는 여전히 확신이 필요할 때가 있다.
다만 예전처럼 그 확신을
무조건 신뢰하지는 않는다.
확신은 언제나 옳아서가 아니라,
늦게 와서 확실해 보일 뿐이라는 걸
조금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.
이 글은 결론이 아니라, 기록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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